건강한 노사관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아무리 성과가 좋은 기업이라 하더라도 노사관계가 악화될 경우 어느 순간 경쟁력을 잃고 시장에서 도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노사관계가 허약한 기업의 주요 특징들을 살펴본다.
지난 5월 14일 발표된 IMD(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원)의 ‘2006년 국가경쟁력 평가’ 결과에 따르면, 한국은 61개 비교 대상국 가운데 38위라고 한다. 이는 지난해 보다 9단계나 하락한 결과이다. 여기에는 다양한 요인이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여러 가지 세부 평가 항목 가운데 특히 취약한 노사관계 경쟁력이 최하위인 61위를 기록해 국가 경쟁력 순위 하락의 주된 요인으로 지적받았다. 향후 우리가 국가 경쟁력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건강한 노사관계 구축이 시급함을 시사한다.
개별 기업도 마찬가지이다. 현재 성과가 아무리 좋은 기업이라 해도, 건강한 노사관계를 구축하고 있지 못한 기업은 결국 큰 낭패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세계 최대 자동차 메이커의 하나인 제너럴 모터스(GM)사의 쇠락이다. 한 때 “GM이 좋으면, 미국도 좋다”라고 불릴 만큼 미국의 자존심으로 통하던 GM이 얼마 전 국제 신용 평가 기관인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로부터 정크 본드급에 해당하는 평가를 받았다. 이처럼 GM이 쇠락의 길을 걷게 된 데에는 다양한 요인이 영향을 주었겠지만, 전문가들이 한결같이 지적하는 주된 원인은 노사관계였다고 한다. 미국 내에서도 최강성 노조로 유명한 전미 자동차 노동조합(UAW)과의 지속적인 대립 관계가 노사관계의 건강성을 헤쳐 경쟁력 약화의 주된 요인이 되었다는 평가이다.
GM과 같이, 건강한 노사관계를 유지하지 못한 기업은 결국 조직의 혁신과 변화를 가로막아, 기업이 시장 환경 변화에 민첩하고 유연하게 적응할 수 없게 된다. 이런 기업은 서서히 경쟁력을 잃고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도태될 수 밖에 없다. 이에 본고에서는 노사관계가 허약한 기업의 5가지 특징을 짚어 보면서 건강한 노사관계 구축을 위한 시사점을 살펴본다.
1. 원칙 없는 땜질식 관행
노사관계가 허약한 기업의 첫 번째 특징은 땜질식 노사관계 관행이 지속된다는 점이다. 노사간 갈등이나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당장 눈 앞에 보이는 어려움을 피하기 위해 임시방편적 문제 해결에 치중할 때 빠지기 쉬운 관행이라 하겠다. 파산 위기에 처한 GM사의 근본적인 문제도 여기에 있었다고 한다. UAW는 당시 재무상태가 좋은 특정 기업과 단체협약을 체결한 이후 다른 기업에도 이를 기준으로 교섭하는 모델 교섭을 고수해 왔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런 점에서 GM은 UAW의 표적이 되었고, 이때 문제가 된 것은 GM이 취해온 태도였다고 한다. 파업 등 분란을 피하기 위해 UAW가 제시하는 지나치게 불합리한 요구를 받아들이는 무원칙적 노사관계 관리 관행을 전개했던 것이다. 반면 GE는 그룹사 전체적으로 수십 개의 노조(복수 노조 포함)가 있으나 안정적인 노사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그 배경에는 원칙 중심의 노사관계 관리 관행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골자를 보면, ‘① 단호/엄격(원칙 준수)’, ‘② 공정(사적 이해관계/감정 배제)’, 그리고 이 두 가지를 ‘③ 일관성’ 있게 보여준다는 것이다.
2. 무기력한 현장 중간 관리자
노사관계가 허약한 기업의 두 번째 특징은 현장 중간 관리자들이 무기력하다는 점이다. 축구 경기를 보면 공격수와 수비수 사이에서 전체 경기를 조율하는 미드필더가 있다. 팀 플레이가 생명인 축구 경기의 중요한 허리 역할을 한다. 미드필더가 약하게 되면 실제 경기가 잘 조율되지 않아 경기가 잘 풀리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마찬가지로 기업 현장의 미드필더인 중간 관리자들이 경영진과 현장 구성원의 징검다리의 역할과 함께 조직 변화의 촉진자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면 건강한 노사관계 또한 기대할 수 없다.
여기서 사우스웨스트 항공사의 노사관계는 현장 중간 관리자들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 주는 사례이다. 사우스웨스트 항공사의 경우, 높은 업무 강도에 비해 급여가 그리 높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노사관계가 매우 안정되어 있는 기업이다. 흔히 무노조 기업이라고 오해하고 있는 사실과는 달리 사우스웨스트 항공사에는 여섯 개의 노동조합이 있으며 직원들의 대부분이 조합원이다. 하지만 미국 내의 어떤 항공사보다 건강한 노사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예컨대 미국 연방 조정 위원회가 항공 업계를 대상으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1985년 이후 파업, 조정, 중재 등의 횟수를 근거로 노사관계 수준을 살펴본 결과 단 1번의 파업/조정 사례가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거의 해마다 파업이 있었던 US 에어라인사의 20분의 1수준으로 항공사 가운데 가장 좋은 결과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 비결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현장의 중간 관리자로부터 나온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사우스웨스트의 전 CEO였던 제임스 파커는 “대부분 노사간 갈등의 근본 원인은 돈 문제가 아니다. 돈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존중이다.”라고 얘기한다. 이를 위해서는 회사와 구성원들간의 긴밀한 상호작용을 통해 일상 조직 생활 속에서 갈등이 해소되고, 회사가 직원들을 배려한다는 인식이 필요한데, 그 핵심 요체가 바로 현장의 중간 관리자라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사우스웨스트는 일선의 중간 관리자 1명이 관리하는 부하직원의 수를 10명 선으로 유지하고 있다. 이는 업계 최고 수준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중간 관리자들은 일상 업무 속에서 코칭과 카운슬링을 제공함으로써 직원들 간의 조화를 더욱 강화하는 가장 가치 있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이를 위해 회사는 중간 관리자들의 코칭과 카운슬링 스킬을 높여주기 위한 리더십 교육을 활성화하고 있다. 코칭 및 카운슬링 교육을 모든 관리자들에게 년 1회씩 실시한다. 여기서 또 하나 주목해야 할 포인트가 있다. 바로 사우스웨이트가 직원 채용에서부터 관리자로의 승진 과정에서 가장 중시하는 인재의 요건이다. 흔히 유머 감각이라고만 알고 있는데, 실제로는 사람에 대한 존중감, 팀웍 등을 포함한 ‘인간관계 조율 능력’을 인재상의 최우선 요건으로 강조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관리자로 올라 갈수록 더욱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이렇듯 사우스웨스트가 현장 중간 관리자의 인간관계 조율 능력을 강조하는 이유는 간명하다. 하루의 절반 이상을 함께하는 상사, 동료들과의 매일 매일의 상호작용 속에서 건강한 노사관계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3. 쥐어 짜기식 경영 방식
세 번째로는, 지나치게 구성원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마른 수건 짜기와 같은 Squeeze式 경영은 단기적 효과를 거둘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구성원의 피로감/불만을 누적시켜 노사관계를 허약하게 할 수 있어 경계해야 한다. 최근 경영 환경이 워낙 어렵다 보니, 대다수의 기업들이 혁신의 고삐를 늦출 수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인지 구성원들의 업무 강도는 날로 높아지고 있는 추세이다. 하지만, 구성원들이 만족감을 느끼지 못한 혁신은 지속 가능한 기업의 성장을 담보하기 보다는 구성원들의 탈진(Burn-out)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보다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최근 노사관계 상의 위기를 겪고 있는 Wal-Mart사의 사례가 그 좋은 본보기라 하겠다. 한때 Wal-Mart사는 ‘Everyday Low Price’로 대변되는 저원가 전략으로 세계 최대의 유통 업체로 성장하였다. 하지만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구성원들의 처우를 희생시켜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내외적인 비난을 받았고, 이러한 쥐어짜기식 경영이 최근 위기의 원인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일 예로 ‘월마트化(Wal-Martization)’라는 말을 유행시킨 바 있는데, 이는 부대 비용의 최소화, 낮은 임금과 직원들을 위한 빈약한 복지 등을 통한 비용 절감으로 저렴한 상품/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영 방식을 의미한다. 이는 자연스럽게 높은 근무 강도와 낮은 임금을 유지하기 위해 직원들에게 무보수 초과 근무를 강요하거나, 부대 비용 최소화를 위해 안전 시설의 설치를 소홀히 하는 등의 결과를 낳게 되었다. 결국 이러한 관행이 지속되면서 퇴직자들의 내부자 고발(Whistle-blowing)이나 ‘초과 근무 수당 반환 소송’, ‘전/현직 여성 근로자의 성차별 소송’ 등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이와 같은 회사의 부당 노동 행위와 관련한 언론의 공개는 사회 전반의 비판 여론을 형성시켰고, Wal-Mart는 ‘미국 내 고용의 질을 저해하는 기업’이라는 불명예를 감수해야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최근에는 무노조 정책을 고수하고 있던 Wal-Mart를 상대로 미국 산별 노동 단체의 하나인 ‘서비스 노동조합’의 노조 결성 시도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4. 립 서비스
네 번째 특징으로는, 평소 구성원들로부터 ‘우리 회사의 경영진은 항상 말뿐이지 뭐…’라는 얘기가 자주 나온다면, 이러한 기업의 노사관계도 허약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현상은 립 서비스가 공공연히 이루어지고 있는 기업에서 흔히 볼 수 있는데, 마치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멋지고 화려한 공약을 늘어 놓기는 하지만, 항상 실제 실천에 옮기지 않는 립 서비스형 정치인들과 흡사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렇듯 약속 불이행, 언행 불일치의 대가는 불을 보듯 뻔할 것이다. 회사에 대한 구성원들의 조직 냉소주의를 낳게 된다. 특히, 구성원들이 회사가 립 서비스와 같이 ‘행동보다 말만 앞선다’는 인상을 가질 경우, 노사관계의 본질인 상호간의 믿음과 신뢰가 두텁게 쌓일 리 없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CEO를 비롯한 경영진이 분명한 원칙과 소신에 입각해 평소 일관된 말과 행동을 견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앞으로 경영진은 직원을 소중히 생각하는 마음을 일관되게 견지하고, 아무리 바빠도 현장을 자주 방문하고 직원들과 직접적인 상호작용의 기회를 늘려야 한다. 이때 열린 마음으로 직원들의 말에 귀 기울여 주고, 고된 업무에 대한 격려의 말을 건네는 것 이외에도 고충이나 애로점을 즉시 해결해줄 수 있는 조치를 취하는 모습이 필요하다. 이와 같은 작은 배려가 축적되어야만 신뢰와 믿음이 자연스럽게 쌓이게 된다.
5. 커뮤니케이션 장벽
노사관계가 허약한 기업의 마지막 특징은 노사 간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이 잘 이루어지지 못하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두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다. 진솔하고 개방적인 커뮤니케이션 문화가 부족하거나, 마땅히 대화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채널이 활성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일 수 있다. 전자의 경우를 보면, 우리 기업의 현장에서 흔히 목격할 수 있는 현상이다. 예컨대, 직원들의 불만이나 고충 사항이 있는 그대로 회사에 전달될 수 있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경영진의 기분을 생각해 직원들의 실제 의견이 가감해서 전달되는 것이다. 이럴 경우, 직원들은 회사와의 커다란 커뮤니케이션 장벽이 존재한다고 느낄 수 있다.
이에 반해 IBM사의 경우, 아주 작은 문제까지도 경영진에게 직접 E-mail 등으로 직언하는 문화가 정착되어 있다고 한다. 경영진 또한 구성원들로부터 제기된 이슈는 아무리 사소하고 하찮은 것이라도 직접 피드백하고 향후 어떤 식으로 조치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메시지를 준다. 또한, 공식/비공식의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활성화하는 것도 중요하다. 예컨대 ‘경영 실적 설명회’, ‘노사 간담회’, ‘노사 협의회’, 각종 ‘분과 위원회’ 등을 활용해, 회사와 구성원들이 서로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화이트 칼라 및 비정규직 구성원들의 고충과 의견을 충분히 수렴할 수 있는 다양한 대화 채널의 확보는 향후 복수노조 시대에 앞서 시급히 보완해야 할 인프라 가운데 하나라 하겠다. 더 나아가 ‘노사 합동 생산성 증진 프로젝트 팀’과 같이 직접적인 현안 과제를 노사가 머리를 맞대고 풀어가려는 노력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이것이 가능할 때, 노사 모두가 사명감과 주인의식을 갖고 생산성 제고와 경영 혁신을 이끌어 낼 수 있다. 노사관계에 있어 베스트 프랙티스로 유명한 Toyota사의 강점도 여기에 있다. 회사는 임금을 비롯한 제반 근로조건을 노사협의회에서 결정할 정도로 노사협의회의 활용도가 높다. 또한 노사협의회 산하에는 전문화된 각종 분과위원회(생산, 안전위생환경, 복지, 임금/보상, 인사 등)가 운영되고 있으며, 충분한 의견교환을 위해 각종 간담회(노사간담회, 지부간담회, 직장간담회 등)를 병행한다. 아울러 Toyota에서는 평상시에 충분한 의견 및 정보 교환을 중시하며 이미 단체 교섭 이전에 비공식적인 대화 관행으로 노사간 이견이 최소화되고 상호 만족할 수 있는 교섭을 이끌어 내고 있다고 한다.
건강한 노사관계 구축에 나서야
올해를 기점으로 우리나라 노사관계 전반의 커다란 변화가 점쳐진다. 전임자 급여 금지, 복수 노조 허용, 직권 중재 폐지 및 공익 사업장 대체 근로 허용 등 ‘노사관계 선진화 로드맵’이 드디어 오는 9월 국회에서 일괄 처리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노사관계 선진화를 위해서는 피할 수 없는 길이지만, 노사 모두에 미치는 영향이 워낙 커서인지 아직까지도 노사정 간의 완전한 합의가 이루어지고 있지는 못한 모습이다.
하지만 여기서 분명한 점은 앞서 짚어본 바와 같이 노사관계가 허약한 기업은 앞으로 전개될 변화에 슬기롭게 적응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건강한 노사관계 구축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기업 경쟁력의 원동력이 사람으로부터 나오듯 훌륭한 노사관계도 마찬가지이다. 노사가 상호 신뢰와 믿음으로 건전한 관계를 형성해야만 가능한 것이다. 설마 ‘우리 회사가…’라는 안이한 생각은 금물이다. 마지막으로 지난해 필자가 일본 출장 길에서 만난 Toyota의 계열사인 아이치 제강의 한 인사 담당 임원의 말을 전하고자 한다. 그는 “성이 함락되는 데는 하루면 충분하지만, 성을 쌓는 데는 기나긴 세월과 무한한 눈물과 땀, 피와 노력이 필요하다. 이런 게 바로 노사관계이다.”라고 말했다. 훌륭한 노사관계는 하루아침에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마치 인간관계와 같이 진실된 마음으로 오랜 시간 꾸준히 다가갈 때 가능하다. <끝>
김현기 | 2006.05.26 | 주간경제 88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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